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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기억나지 않음, 형사 by 찬호께이

by Hygge_! 2020.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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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3.5/5
한줄평 : 대부분의 용두사미는 허망한데, 감히 재밌는 용두사미라 칭하고 싶다. '수고해요'라는 한 문장이 다 살렸다!

 

실제로는 13.67이 기억나지 않음, 형사보다 더 늦게 발간되었다. / Yes 24 캡처

 

찬호께이란 소설가에 푹 빠져 지낸 한 달이었다. 망내인, 13.67, STEP에 이어 기억나지 않음, 형사를 읽었다. 찬호께이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번에도 재밌게 읽었다. 할 게 많은 요즘 세상에 책 한 권 집중해서 읽기가 힘든데 스벅에서 한 달음에 다 읽어버렸다. 이야기 자체가 질질 끄는 면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었고, 계속 결말을 궁금하게 만드는 작중 떡밥들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에 책 한 권 다 읽는 게 얼마만인지!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사건 현장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아파트에서 두 남녀가 함께 살해됐다. 배 속의 태아마저 칼로 찌른 잔혹한 범죄에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한다. 곧 이어 장면이 바뀌고, 나는 집 근처에 주차된 차 안에서 깨어난다. 지독한 숙취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는 질투에 사로잡힌 한 남자였다. 광기에 빠져 아내의 불륜 상대뿐 아니라 그 아내와 배 속에 든 아이마저 죽인 것이다.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경찰서로 향하던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다. 어제만 해도 2003년에 일어난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곳은 2009년이었던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6년의 시간이 지나버린 걸까? 나는 우연히 만난 여기자와 함께하며 엽기적인 살인 사건의 진상과 기억의 공백을 찾아 헤맨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와 중국어권 장르소설>(윤영천,채널예스)-

 

이처럼 흥미진진한 도입부와 함께 '기억나지 않음, 형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6년간의 기억상실이라는 좀 뜨아한 설정은 이내 논리적으로 독자의 마음을 한 걸음씩 침식해온다. 중간쯤 읽으면 이 모든 현상이 합리적으로 이해되며 더욱 책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초기작이라 그런가? 떡밥 회수와 반전은 다소 엉성한 부분이 있었다. 특히 막판 반전을 묘사하는 장면은 범인이 너무 친절해서 동시에 너무 억지스러워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찬호께이라는 작가의 가능성이 여실히 묻어 나온 작품이라 흥미로웠다. 그 가능성은 망내인과 13.67에서 대박 치기도 했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책의 서장과 종장의 수미상관식 배치였다. 첨에 이게 무슨 뜻이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의미를 알고 보니... 오! 여기에 모든 복선이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이 책에서 가장 감탄한 부분이다.

 

'수고해요'란 문장을 주목해보자

 

Key Story

일가족이 무참히 살인된 사건을 조사하던 주인공 형사. 잠에서 깨어보니 6년간의 기억이 없다. 그가 조사하던 사건은 이미 일단락되었지만 형사의 감이 계속해서 경종을 울린다. 그때 사건을 재조명하려는 여기자와 합류해 숨겨진 진상을 다시 한 번 파헤쳐 가는데... 홍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반전 추리물!

 

매력 포인트 
찬호께이란 인물이 세상에 알려진 초기작.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합니다^오^

 


-직접적인 스토리 및 반전에 대한 리뷰가 있습니다. 주의해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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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쉬유이

형사. 대선배와 순찰 도중 무장 강도를 제압함. 그 와중에 대선배가 죽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그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을 겪고 있음. 일가족 살인 사건 수사 도중 단기 기억상실이 재발해 6년간 기억이 사라짐. 여기자와 함께 사건을 재조명하려는 여기자와 함께 숨겨진 진상을 파헤침

 

린젠성

일가족 살인 사건의 범인. 자신의 아내와 바람피운 남자와 그의 임신한 아내를 무참히 살해함. 도주 중에 사고사

 

아친

여기자. 일가족 살인사건이 영화화되자 그에 발맞추어 그때 사건을 재조명하는 특집 기사를 작성하고 있음. 쉬유이를 도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침

 

뤼후이메이

일가족 살인사건 당시 살해된 임신한 여자의 언니. 간신히 살아남은 여동생의 딸과 함께 교외에서 살고 있음

 

옌즈청

린젠성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스턴트맨. 린젠성은 무고하다 주장하며 억울한 누명을 벗게 하기 위해 노력함

 

이처럼 등장인물을 정리해보았는데... 반전 때문에 다소 무용지물인 듯하다(이야기를 끝까지 보신 분은 이해하실 듯^^)

 

핵심 스토리라인

단기 기억상실증이 재발해 지난 6년간의 기억이 없는 쉬유이. 그의 기억은 6년 전 발생한 일가족 살인사건에 멈춰있다. 우연히 그를 만나러 온 여기자 아친. 일가족 살인사건을 영화화하는데 발맞춰 그때 당시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서 담당 형사였던 쉬유이를 찾아왔다. 둘이 살인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숨겨진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사실 쉬유이 형사는 쉬유이 형사가 아니라(이게 뭔 말이지...?) 단역배우이자 스턴트맨인 옌즈청이었다. 그는 과거 부모님이 사망한 사고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단기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었다. 고아가 된 어린 그를 챙겨주었던 린젠성을 아버지처럼 따랐던 그는, 린젠성이 그런 참혹한 살인사건을 일으켰으리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스턴트맨으로 생업을 유지하면서 사건 발생 6년 동안 홀로 사건을 파헤치고 있었던 그는 우연찮게 일가족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 '쉬유이' 형사 역할로 출현하게 된다. 실제 사건을 담당했던 쉬유이 형사로부터 자문을 받던 그는, 극중 역할에 몰입함과 동시에, 당시 사건을 조사하는데 더 박차를 가하다가... 6년짜리 기억이 사라지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겪고야 말았다. 이 후유증으로 그는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되고 급기야 본인이 진짜 쉬유이 형사인 줄로 착각하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우연에 우연..!

 

여기자 아친은, 일가족 살인사건 관련 특집 기사 작성을 위해 쉬유이(옌즈청)을 찾아온다. 그들은 생존자 뤼후이메이(임신한 피해자의 언니)를 만나 이야기도 들어보고, 죽은 린젠성의 아내도 만나보고, 린젠성의 친구인 옌즈청의 영화사 사무실도 방문해가면서 사건에 숨겨진 얼개를 조금씩 맞추어간다. 둘은 린젠성 보다도 린젠성의 친구인 옌즈청이 진짜 살인 용의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본인이 본인을 의심하다니 이렇게 어이없을 수가...)

 

옌즈청의 대한 의심이 커지는 시점에서, 여기자 아친은 본인이 속한 잡지사로부터 충격적인 자료를 건네받는다. 옌즈청의 사진을 요청해서 잡지사로부터 받았는데, 그 사진 속 모습이 바로 본인 옆에 있는 쉬유이와 똑같은게 아닌가!  아친은 생각한다. 옌즈청이 본인이 진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해 쉬유이로 위장해 나와 생존자 뤼후이메이와 그녀의 어린 조카에게 접근한 후 죽이려 하는구나!

 

아친은 기지를 발휘해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쉬유이라고 주장하는 옌즈청을 잡았다. 총에 맞은 옌즈청은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은 해프닝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듣고 달려온 진짜 쉬유이 형사가 병원에서 모든 사실을 설명해준다.

 

'옌즈청은 진짜 범인이 아니다. 내 역할을 영화에서 연기하는 스턴트맨이자 단역배우이고, 실제로 일가족 살인사건 당시에도 촬영을 했었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완벽하다. 아마도 내 역할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해서 열심히 대본 외우고 몰입하던 와중에 기억상실을 겪어서 정체성에 혼란이 온 것 같다. 범인은 린젠성이 맞다.'

 

이렇게 이야기가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옌즈청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린젠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진범은 따로 있다... 그는 아친과 동행하며 겪었던 여러 일을 곱씹는 와중에 벼락같은 힌트를 발견하게 된다. 데이비드 보위의 팬이지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데이비드 보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하던 뤼후이메이의 행동들....

 

그렇다! 진범은 뤼후미에이였던 것이다. 그가 임신한 여동생과 남편을 죽였고, 뒤늦게 그 살해장소에 도착한 린젠성이 범인으로 몰렸던 것이다(사실 이 부분을 설명하는 부분이 좀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정체성 혼란을 겪는 사람이 왜이리 많이 나오는지...).

 

마지막 순간에 뤼후이메이는 아친을 죽이려했지만 옌즈청의 재빠른 판단력과 행동력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결국 뤼후이메이는 경찰에 잡히고 아친과 옌즈청은 서로 눈이 맞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수고해요'의 의미*

첫 장에 칼에 맞아 죽은 뤼슈란(뤼후이메이의 여동생)이 쉬유이 형사에게 웃으며 '수고해요'라고 말하는 다소 비현실적인 장면(죽은 자가 말을 하다니!)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옌즈청은 아친과 영화관 데이트를 하다 우연히 같은 영화(이번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에 출연한 단역 여배우를 만난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그녀는 '수고해요'라는 인사말을 하는데...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떡밥이었다. 앞의 첫 장은 실제 쉬유이가 겪은 사건 현장이 아니라, 쉬유이 역할을 하는 옌즈청이 연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죽은 뤼슈란이 '수고해요'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실제로 그 말을 한 사람이, 뤼슈란을 연기하고 있었던 단역 배우(마지막에 나온 그 단역배우!)였기 때문이다

 

'쉬유이 형사=옌즈청'이란 떡밥이 우리가 알기도 전에 처음부터 제시되었다는 사실... 저만 놀랐나요?

여하튼 이 배치가 용두사미로 끝날 뻔한 (실제로 그렇긴 했지만) 본 작품을 살리는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정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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