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 4/5
한줄평 : 나도 작가처럼 개인주의자 선언을 하고 싶다. 온전히 나로서 타인과 건강하게 부대끼는.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그의 취향, 사고방식,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찌 나랑 이리 비슷한지(물론 이른바 사회적 레벨은 천지차이긴 하다만...) 문장을 하나하나 만날 때마다 너무 반가웠고 때로 소름 끼쳤다. 대한민국 최상위층 직업군인 판사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권위의식에 휩쓸리지 않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자유인으로서 사회와 이슈를 바라보고, 본인만의 생각을 날카롭게, 때로는 위트 있게 그려냈다.
책을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몇 문장들을 옮겨 적어본다.
- 다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다.
-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그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 왜 개인주의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 내 일을 간섭없이 내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해내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내가 매력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고, 심지어 가끔은 가족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갖길 원한다.
- 로마에 일 년, 크레타 섬에 일 년, 세계를 뿌리 없는 부평초처럼 자유롭게 떠돌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소설과 소소하고 유치한 수필을 끝도 없이 써대던 예전의 하루키다.
- 변한 건 세대가 아니라 시대다... 아무도 이십대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그 누구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기도 하다.
나도 작가처럼 개인주의자 선언을 하고 싶다. 그러나 읽는 내내 한 가지 불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개인주의자로 오롯이 서기 위해선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경제적 자유다. 이 지극히 실현하기 어려운 (특별히 요즘 같은 저성장 시대에서) 경제적 자유를 실현한 사람은 도대체 이 사회에 몇 명이나 있을까?
만약 저자가 정년고용이 보장되는 판사가 아니라 (나와 같은) 일반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었다면 그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훨씬 더 어려웠으리라 감히 확신한다.
경제적 자유가 뒷받침 되지 않는 한, 이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개인으로서 건강한 자유를 누리기가 쉽지 않다. 당장 저 사람에게, 내가 속한 조직에게, 나의 상사에게, 고객에게 밉보이면 손해인 상황에서 나의 자유를 온전히 주장하기란 어찌나 어려운지.
저자와 똑같은 취향 (초창기 하루키의 광적인 팬이면서 소설과 글쓰기와 음악을 좋아하는)과 너무 다른 삶의 환경(판사 vs 평범하고 흔하디 흔한 직장인)이 극렬하게 대비되면서 책을 덮고 나서 약간의 씁쓸함을 느꼈다.
그러나 단순히 판사니까 이렇게 살 수 있지라고 치부하기엔 삶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는 너무 매력적이었고 닮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아무런 목표 의식 없이 회사에서 시간만 보내면 안 되리라. 어떻게든 주체적 삶을 위해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해봐야겠다. 이 책을 덮고 생각한 내 나름의 결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는 KFC 치킨을 먹어야지^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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